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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 후기

by 바보채플린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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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는 ‘붕당 정치의 붕괴’에서 시작해 ‘국가 체제의 붕괴’로 끝났다

붕당은 공론의 장치였으나, 이해 집단의 권력 도구로 변질되었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인은 지주제를 기반으로 한 지배층이었기에, 개혁을 말하면서도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서인 정권은 농민과 하층 사회의 요구에 근본적으로 응답하지 못했고, 정치의 위기는 점차 누적되었다. 겉으로는 남인의 도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기존 정치 체제의 한계가 폭발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조선의 역사 - 백과사전

출처-황인희의 역사 산책(조선의 마지막 왕실 가족이 거주했던 낙선재 )

 

예송 논쟁은 예(禮)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권력의 정통성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남인은 서인의 북벌론과 정치 노선을 비판하며 예송을 제기했고, 이는 단순한 상복 기간 문제가 아니라 왕통의 정통성과 정치 주도권을 가르는 싸움으로 번졌다. 1차 예송에서는 서인이, 2차 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하면서 정국은 요동쳤고, 붕당 간 대립은 더 이상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예가 사회 질서의 근본 규범이었던 시대에, 예송은 곧 체제 논쟁이었다.

조선의 역사 -  붕당 정치의 변질

 

 

경신환국 이후 붕당 정치는 균형을 잃고 적대 정치로 변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자 서인은 내부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다. 이후 붕당은 서로를 견제하는 정치 세력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집단으로 변해갔다. 사사와 유배가 일상화되었고, 정치 투쟁은 왕위 계승 문제로까지 비화되며 극단화되었다. 이 시점에서 붕당 정치는 이미 공론 정치가 아니라 일당 독재의 경쟁이 되었다.

숙종의 환국 정치는 왕권 강화였지만, 정치의 안정은 아니었다

숙종은 붕당 간 대립을 이용해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 환국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켰고, 결국 경종 대에 이르러 노론과 소론은 왕위 계승과 대리청정 문제를 둘러싸고 생사를 건 대립으로 치달았다. 왕권은 살아 있었지만, 국정은 소모되고 있었다.

사회·경제의 변화는 붕당 정치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17세기 후반 이후 상품 화폐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치 집단들은 군영·재정·상업적 이익을 장악하려는 데 몰두했다. 정치의 쟁점은 예론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이동했고, 향촌 사회에서는 지주제와 신분제가 흔들리며 사족 중심 질서가 붕괴되었다. 붕당을 떠받치던 사회적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조는 붕당을 없애려 했고, 정조는 정치의 규칙을 바꾸려 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당쟁 속에서 영조는 탕평을 국정의 원칙으로 삼아 노론과 소론의 온건파를 고루 기용했다. 정조는 이를 계승·발전시켜, 탄핵 남용을 막고 인사권을 국왕이 직접 장악했으며, 대역죄의 남용을 제한했다. 규장각과 초계문신제를 통해 왕권과 정책 능력을 동시에 강화하며, 붕당을 통제 가능한 정치 구조로 되돌리려 했다.

탕평 정치의 전개

그러나 정조의 죽음과 함께 탕평 체제는 무너졌다

1800년 정조가 급서하자 어린 순조가 즉위했고, 왕권의 공백 속에서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했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번갈아 권력을 장악하며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이는 붕당 정치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했다. 정치 권력은 이제 당파가 아니라 혈연과 가문의 소유물이 되었다.

세도정치는 국가를 사유화했고, 백성의 삶은 붕괴되었다

60여 년간 이어진 세도정치는 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을 낳았고, 삼정의 붕괴는 농민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은 우발적 폭동이 아니라, 체제 붕괴에 대한 집단적 저항이었다. 자연재해와 전염병까지 겹치며 조선 사회는 극심한 불안에 빠졌다.

세도 정치의 전개

흥선대원군은 무너진 왕권을 복원하려 했지만, 시대를 거슬렀다

대원군은 세도 정권을 제거하고, 호포제·사창제·서원 철폐로 민생과 왕권 회복을 시도했다. 비변사를 축소하고 경복궁을 중건하며 국가 기강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그 비용은 백성에게 전가되었다. 쇄국 정책과 척화비는 외세의 침입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근본적인 체제 전환에는 실패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문호 개방 이후 조선은 선택의 연속에서 흔들렸다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문을 열었고,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임오군란은 개화 정책의 부작용을 폭발시켰고, 갑신정변은 너무 이른 개혁의 실패를 보여주었다. 조선은 스스로 개혁할 힘도, 외세를 막을 힘도 부족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은 민중이 처음으로 국가 개혁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동학 농민군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걸고 지방 사회의 개혁을 실천했지만, 일본군과 관군의 근대적 무기 앞에서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이후 한국 근대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갑오개혁

 

일본의 개입은 개혁을 침략으로 바꾸었다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은 조선의 개혁이 더 이상 자주적 선택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국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결국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의 막을 내렸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조선 후기는 이렇게 정리된다

붕당 정치의 변질 → 탕평의 마지막 시도 → 세도 정치 → 왕권 붕괴 → 외세 침투 → 민중 저항 → 국가 체제의 종말

조선 후기는
정치가 사회를 지탱하지 못했을 때, 역사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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