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인문학
사람과 사람 사이 ⑯
기댈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강한 사람은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사랑해'라는 말보다 '오늘은 좀 쉬어요.'라는 말에 더 가까워진다."
아침이 조금 달라진 날
봄이 무르익어 가던 어느 월요일이었다.
정우는 평소처럼 일찍 눈을 떴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시려는데, 순간 어지럼증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이었지만 낯선 느낌이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괜찮겠지.'
사람은 참 이상하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는 쉽게 무시하면서, 마음속 걱정은 크게 키운다.
그날 오후, 그는 병원을 찾았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병원 대기실은 조용했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주변에는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젊은 부부도, 아이를 안은 부모도 있었다.
정우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다가, 어느 날 병원 의자에서 그것의 소중함을 배운다.'
진료실 문이 열렸다.
"정우 선생님, 들어오세요."
검사 결과는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다만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무리하셨네요."
"혈압도 관리하시고, 잠도 조금 더 주무세요."
"무엇보다 혼자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다.
혼자 다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말하지 않은 하루
그날 저녁.
수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정우는 잠시 망설였다.
병원에 다녀왔다는 말을 할까.
괜히 걱정만 끼치는 건 아닐까.
결국 그는 평소처럼 말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이 때로는 가장 큰 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틀 뒤.
수연이 작은 보온병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이거요."
"생강차예요."
정우가 웃으며 물었다.
"갑자기요?"
수연은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병원 다녀오셨잖아요."
정우는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전화할 때요."
"평소보다 목소리가 조금 느렸어요."
"...그리고 괜찮다는 말을 두 번 하셨고요."
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의 표정을 숨길 수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목소리까지는 숨기기 어렵다.
사랑은 약한 모습을 허락하는 일
정우는 오래전 아버지를 떠올렸다.
평생 가족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사람.
몸이 아파도 "괜찮다."라고만 말하던 사람.
그때는 그것이 강인함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짜 강한 사람은,
혼자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 "오늘은 조금 힘듭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무너지는 일이 아니다.
신뢰를 건네는 일이다.
벚꽃 아래에서
며칠 후.
둘은 벚꽃길을 걸었다.
꽃잎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흩날렸다.
수연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정우 씨."
"네."
"다음부터는..."
"아픈 일이 있으면 저한테 먼저 말해 주세요."
정우는 조용히 웃었다.
"괜히 걱정할까 봐 그랬습니다."
수연도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기회를 빼앗지 마세요."
그 말에 정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가진 가장 따뜻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사랑은 걱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꽃비를 바라보았다.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다.
정우가 말했다.
"예전에는 늙는 게 두려웠습니다."
"지금은요?"
"같이 늙어갈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수연은 대답 대신 정우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따뜻했다.
그 온기는 어떤 약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오늘의 마음 한 줄
사랑은 상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해져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책갈피 문장
"인생의 후반부에서 사랑은 심장을 뛰게 하는 설렘보다,
'괜찮아요. 내가 있잖아요.'라는 한마디로 더 오래 살아남는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나는 힘든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나요?
- 혹시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혼자 견디고 있지는 않나요?
- 오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무리하지 말아요."라는 말을 건네볼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 ⑰
사랑은 용서하는 마음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
정우는 우연히 수연의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게 됩니다.
그 사진 속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녀의 지난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안고 살아갑니다.
다음 편에서는 첫사랑, 이별, 상실,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는 일
이 현재의 사랑을 어떻게 더 깊게 만드는지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사랑은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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